창세기 4장 강해

창세기 4장 강해

창세기 4장은 최초의 살인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어 에덴의 동쪽에 거처를 정하고 살아갑니다. 얼마 후 두 사람에게 첫아들인 가인이 태어나고 둘째인 아벨이 태어납니다. 가인은 농사를 짓는 농부이고, 아벨은 양을 키우는 목동입니다. 어느 날 두 사람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아벨의 제사는 받지만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습니다. 이 일로 화가 난 가인은 아벨을 조용히 들로 불러내여 돌로 쳐 죽입니다. 결국 가인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저주를 무시하고 성을 쌓고 살아갑니다. 가인의 후손 이야기가 4장 후반부에 기록됩니다. 창세기 4장은 아담과 하와의 타락이 가져온 실상이며, 죄성을 타고난 사람들이 어떻게 변하는가는 가인의 후손을 통해 설명합니다.

 

가인과 아벨의 제사

아담과 아내 하와와 동침하여 가인을 낳습니다. 가인은 '더하다'라는 뜻입니다. 하와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는 겸손한 표현을 하는 것 같지만 문장을 깊이 들어가 보면 자신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처럼 나도 사람을 만들었다는 교만한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가인 이후 동생인 아벨을 낳습니다. 아벨은 헤벨(허무)이라는 단어에서 왔을 것이라 학자들을 주장합니다. 아벨이 진짜 이름인지 문학적 표현인지 알 수 없으나 결국 아벨은 허무하게 죽게 됩니다.

 

직업의 의미

아벨은 양을 치는 자이고, 가인은 농사를 짓습니다. '농사를 짓는다'는 표현은 히브리어 '아바드'로 섬기다는 뜻입니다. 즉 가인은 땅을 섬기는 자, 좀더 과장되게 표현하면 땅을 섬기는 땅의 노예란 의미도 가능합니다. 창세기 기자는 의도적으로 이런 표현을 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창세기 3장에서 아담은 저주를 받아 땅을 섬기지만 제대로 된 열매를 얻지 못하게 됩니다. 가인은 아담이 받은 저주를 이어받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아벨의 양을 치는 직업은 굉장히 의아합니다. 정통에서 벗어난 직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열납 되지 않은 제사

세월이 지난 후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 알 수 없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다는 말지만 어떤 의도로 사용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추측해 본다면 이 즈음에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 또는 가인과 아벨에 제사하도록 명령(계시)했을 수 있습니다. 하여튼 둘은 하나님께 제사합니다. 가인은 땅의 소산이며,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입니다. 가인은 아무런 설명 없이 단지 '땅의 소산'입니다. 저주받은 땅의 소산이라고 말하며 과할까요? 그런 뉘앙스가 느껴집니다.

 

안타깝게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았지만 '가인과 그의 제물'은 하나님께서 받지 않습니다. 제물은 제사자와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제물과 제사자는 함께 받거나 거절됩니다.

 

가인은 자신의 제사가 열납 되지 않자 분노합니다. 그는 낯이 변했습니다. 하나님은 가인을 찾아와 말씀하십니다.

 

"네가 분하여 함을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는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참으로 기묘한 표현입니다. 여기서 가인의 제사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단서가 나옵니다. 가인은 선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한 마디로 그는 악한 자입니다. 결국 그는 아벨을 들로 불러내어 죽이고 맙니다. 가인은 최조의 예배자이자 최초의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가인이 받은 저주

가인은 하나님께 저주는 받습니다. 그 저주는 땅을 피하여 유리하는 죄입니다. 가인의 저주를 좀 더 살펴봅시다. 

 

땅에서 저주를 받아

먼저 가인이 아우 아벨을 죽여 흘린 피로 인해 땅이 저주를 받았다고 말합니다.(11절) 이것은 아담이 받은 저주와는 약간 다르지만 결론은 똑같습니다. 수고하고 애써도 그 열매를 온전히 내지 못합니다.(12절) 즉 수고는 하지만 수고한 대로 열매를 얻지 못하는 것이죠. 아무리 노력해도 노력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인생, 이것이 가인의 인생입니다.

땅의 저주는 가인에게 치명적입니다. 왜냐하면 가인은 농부이며, 땅을 섬기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본분을 망각한 것이죠. 결국 이러한 저주는 그로 하여금 농업을 포기하는 중요한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땅과 사람과의 분리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켰습니다.

 

유리하는 자

두 번째 저주는 땅에서 유리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12절) 두 번째 저주는 첫 번째 저주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동생 아벨을 죽였기 때문에 땅이 저주를  받았고, 그로 인해 땅에서 유리하는 자가 된 것입니다. 하지만 가인은 땅에서 유리하는 자의 삶을 살지 않고 놋(유리하다) 땅에 자신의 아들 이름인 에녹 성을 쌓고 지냅니다. 하나님의 징계를 거절한 것이죠. 가인 버린 유리하는 벌은 후에 아브라함이 짐으로 저주의 역사를 생명의 역사로 탈바꿈합니다.

 

 

가인의 후손들: 죄의 가속화와 상세화

가인의 이야기가 좀더 진행됩니다. 가인은 '여호와 앞을 떠나'갑니다. 이 말은 여호와의 임재, 여호와의 간섭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을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얽매인 삶을 싫은 것이죠. 그는 '에덴 동쪽'에 자리한 놋 땅에 거합니다. 그곳에서 성을 쌓고 지냅니다. 이후 가인의 후손들이 출생합니다. 족보는 갑자기 라멕에서 길게 늘어지면 설명합니다.

라멕은 두 명이 아내가 있었고, 그는 폭력과 살인자입니다. 그는 분노로 인해 사람을 죽이고도 정당하게 여긴 사람입니다.

 

셋과 에노스: 그럼에도 소망은 끊이지 않고

가인의 후손 이야기가 중단되고 다시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로 되돌아갑니다. 성경은 아벨을 대신해 '셋'을 하나님이 주신 '다른 씨'라고 말합니다. 4:1절과 비교해보면 하와의 마음 자세가 완전히 바뀌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 그는 의기양양해서 가인을 마치 자신이 창조한 것처럼 말했지만, 그는 살인자였습니다. 죄의 실체를 자신의 눈으로 똑똑히 확인한 것입니다. 결국 하와는 하나님께 엎드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가인이 아닌 아벨이 믿음의 계보를 따라가고 있음을 인정합니다. 무의미하다 치부한 아벨이 하나님의 진정한 믿음의 후손이었습니다. 아벨의 죽음으로 아담과 하와는 후손을 기대할 수 없었지만 하나님은 그들에게 또 한 명의 아들을 허락합니다. 그의 이름은 셋입니다. 셋도 성장하여 아들을 낳는데 그의 이름은 에노스입니다. 에노스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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