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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설교, 로마서 5:5-11,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biblia 2025.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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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순절의 깊은 묵상 가운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의 은혜를 다시금 마음에 새깁니다. 사순절은 단지 금식과 절제의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깊고 넓은지를 체험하는 은혜의 계절입니다. 그 사랑의 절정은 십자가이며, 오늘 우리가 나눌 로마서 5장 5절부터 11절 말씀은 바로 그 십자가의 사랑이 얼마나 견고하고, 영광스럽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구속의 의지를 담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로마서 5:5-11)

 

이 말씀은 한 문장 한 문장이 모두 복음의 중심을 꿰뚫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얼마나 확고한 사랑에 기초한 것이며, 그 사랑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로 우리에게 주어졌는지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해 십자가의 신학적 깊이를 성경 전체의 맥락에서 살펴보니고 합니다. 말씀을 통해 큰 은혜 받기 원합니다.

소망이 부끄럽지 않은 이유 (로마서 5:5)

바울은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소망'이란 단순한 기대나 바람이 아닙니다. 이는 종말론적 확신, 즉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의롭다 하심과 영광스러운 구원의 완성을 향한 확고한 기대를 말합니다. 이 소망이 부끄럽지 않다는 것은, 그것이 결코 실망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의 낙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에 기초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랑을 성령을 통해 우리의 마음에 부어 주셨습니다. 이는 단지 감정의 충만함이 아니라, 존재론적 변화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진 자는 전혀 다른 정체성과 방향성을 가지게 됩니다. 사순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사랑은 단지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도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있는 실재임을 믿어야 합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 그 사랑을 증언하시며, 그 사랑은 결코 거짓이 아님을 날마다 확인시켜 주십니다(로마서 8:1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로마서 5:6-7)

바울은 이어서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여기서 '연약함'은 단순한 육체의 허약함이 아니라, 죄로 인해 도덕적, 영적 무능력 상태를 의미합니다. 인간은 본성상 하나님을 거스를 수밖에 없는 존재이며, 의를 행할 능력조차 상실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에, 기약대로, 즉 하나님의 정하신 시간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경건하지 않은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지도 않고, 하나님과 원수 된 상태에 있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기다리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아직 죄 가운데 있을 때, 우리에게 다가오셨습니다.

 

이 사랑은 인간의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바울도 고백합니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도 드물며,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을 수 있지만(로마서 5:7), 우리는 그 어떤 자격도 갖추지 못한 상태였음을 인정합니다. 십자가는 그런 자들에게 부어진 초월적 사랑의 표현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로마서 5:8)

그리고 복음의 정점과 같은 선언이 나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8). 이 말씀은 복음의 본질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우리가 변화되었기 때문에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철저히 죄인일 때, 아무 공로도 없을 때, 하나님은 먼저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확증하셨느니라'입니다. 헬라어로 '선포하고 고정시키다'라는 의미를 갖는 이 단어는, 하나님의 사랑이 단지 감정이나 태도가 아니라, 역사 속에서 실제로 드러난 사건임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이 의심할 여지 없는 진리로 공표된 자리입니다. 이 사랑은 조건도 없고, 후퇴도 없으며, 변질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하나님의 자기 증명입니다. 우리는 이 사랑 앞에서 무릎 꿇을 수밖에 없습니다.

 

화목하게 되었은즉 (로마서 5:9-11)

이제 바울은 이 놀라운 사랑이 가져온 결과를 설명합니다. 첫째는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의롭다 하심, 곧 칭의는 단지 죄 용서 그 이상입니다. 이는 법정적 선언이며,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새로운 신분을 부여받는 것입니다. 이는 오직 그리스도의 피, 즉 그의 대속적 죽음으로만 가능했습니다(히브리서 9:22).

 

둘째는 "진노하심에서 구원"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죄에 대한 거룩하고 의로운 반응이며, 회피하거나 무시할 수 없는 실재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그 진노로부터 구원받았습니다. 이는 형벌로부터의 면제이며, 하나님의 평화 안으로의 초대입니다.

 

셋째는 "화목"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하나님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되었고, 더 나아가 이제는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말합니다(로마서 5:10). 화목은 단지 싸움이 끝났다는 정도가 아니라, 관계의 회복과 친밀한 교제의 복원을 뜻합니다. 십자가는 단지 죄의 대가를 치른 자리만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이 다시 손을 맞잡은 자리입니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로마서 5:11).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두려움 속에 하나님을 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기쁨과 확신으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는 슬픔의 자리일 뿐 아니라, 진정한 기쁨이 시작된 자리입니다.

 

결론: 십자가 사랑 안에서 살아가는 사순절 (갈라디아서 2:2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사순절을 보내며 단지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는 데서 멈춰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그 고난의 신학적 의미를 붙들고, 그 사랑이 오늘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말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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