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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설교, 요 18:28-40, 진리가 무엇이냐

biblia 2025.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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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순절의 깊은 길을 걷는 우리는 점점 더 예수님의 십자가를 향해 나아갑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묵상할 본문은 요한복음 18장 28절부터 40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이 장면은 예수님께서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신문을 받으신 후,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 앞에 서시는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재판의 형식을 띠고 있으나, 본질적으로는 인류의 죄와 진리 사이의 충돌이 벌어지는 자리이며, 하늘의 왕이 세상 권력 앞에서 침묵하시는 장엄한 순간입니다.

"빌라도가 이르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 (요한복음 18:38)

예수님은 침묵하셨지만, 그 침묵 속에는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구속의 계획이 선포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이 장면을 통해, 인간의 부패함과 하나님의 의로우심이 어떻게 부딪히고,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게 그 충돌을 품으셨는지를 보게 됩니다.

유대인의 법적 외피 속에 감추어진 내면의 죄 (요한복음 18:28-32)

본문은 예수님이 빌라도의 관정으로 끌려가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자신들은 관정 안에 들어가지 않고, 바깥에서 빌라도를 불러냅니다. 그들은 외적으로는 율법을 지키는 듯하지만, 실상은 거짓 증언과 살인 음모를 꾸미고 있었습니다(요한복음 18:28).

그들의 행위는 우리에게 외식이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죄의 본질은 단지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보다, 마음의 동기와 방향에 있습니다. 율법을 어기지 않기 위해 이방인의 집에는 들어가지 않으면서도,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을 사형에 넘기는 모순. 이것이 인간의 내면입니다. 사순절은 이처럼 우리의 이중성과 위선을 직면하게 합니다.

빌라도는 그들에게 묻습니다. "너희가 이 사람에 대하여 무슨 일로 고소하느냐?" (요한복음 18:29). 유대인들은 명확한 죄목을 제시하지 않고, 단지 이렇게 말합니다. "이 사람이 행악자가 아니었더라면 우리가 당신에게 넘기지 아니하였겠나이다" (요한복음 18:30). 이는 재판이 아니라 이미 정해진 결론을 위한 과정일 뿐이었습니다. 죄 없는 자를 죽이기 위한 왜곡된 절차, 그것이 이 재판의 본질이었습니다.

정치적 계산과 하나님의 섭리 (요한복음 18:33-35)

빌라도는 다시 예수님을 관정 안으로 불러들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묻습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요한복음 18:33). 이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정치적 위협 요소를 확인하려는 계산이었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스스로 왕이라 주장한다면, 이는 로마에 대한 반역으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되묻습니다.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냐?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하여 네게 말한 것이냐?" (요한복음 18:34). 이는 빌라도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 같은 질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마음 깊은 곳을 꿰뚫어 보십니다. 빌라도는 외형적 권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실상은 두려움과 타협의 인물임을 우리는 이후의 흐름 속에서 확인하게 됩니다.

이 장면은 우리로 하여금 질문하게 합니다. 우리는 진리에 대한 판단을 사람의 말에 따라 하고 있지는 않은가? 주님의 질문은 오늘 우리에게도 울립니다. 너는 내게서 진리를 들었느냐, 아니면 세상의 말에 따라 나를 판단하느냐?

예수님의 왕권과 하나님 나라의 본질 (요한복음 18:36-37)

예수님은 자신의 왕권에 대해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요한복음 18:36). 예수님은 자신이 이 땅의 정치적 권세를 쥐기 위한 분이 아니심을 선포하십니다. 그분은 이 세상 나라의 논리, 무력과 지배, 계산과 거래로 움직이는 나라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통치를 말씀하셨습니다.

이어 예수님은 자신의 사명에 대해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요한복음 18:37). 예수님의 탄생과 사역, 그리고 죽음은 진리에 대한 증언이었습니다. 진리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인격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육화된 실체입니다.

예수님은 진리를 선포하셨고, 그 진리는 사람의 마음을 찌르며 선택을 요구합니다. 빌라도는 그 진리 앞에 서 있었지만, 결국 그는 그 진리와 눈을 마주하지 못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진리가 무엇이냐?" (요한복음 18:38). 그리고는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자리를 떠납니다. 진리 앞에서 침묵하거나 외면하는 자는 결국 진리의 외곽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군중의 선택과 죄악의 전이 (요한복음 18:38-40)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했다고 선언합니다. 그러나 그는 군중의 압력 앞에서 타협합니다. 유월절이 되면 죄수 하나를 놓아주는 관례에 따라, 예수님을 놓을까 하여 제안하지만, 군중은 바라바를 요구합니다. 바라바는 강도였습니다(요한복음 18:40).

이 장면은 복음서에서 매우 중요한 신학적 상징을 내포합니다. 죄 없는 예수님이 죄인 바라바를 대신하여 죽으시는 것입니다. 이는 대속의 모형입니다. 그분이 대신 죽으셨기 때문에, 죄인이 자유를 얻게 됩니다. 바라바는 단지 한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바라바처럼 죄 가운데 있었지만,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인해 살아난 자들입니다.

빌라도는 진리를 알았지만 두려워했고, 유대인들은 율법을 안다고 했지만 정작 율법의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거부했습니다. 이 재판은 인간의 눈에는 불의였으나, 하나님의 눈에는 완전한 의가 실행된 자리였습니다. 그리스도는 불의한 재판을 통해 의로운 구속을 이루셨습니다.

결론: 진리 앞에 선 자의 응답 (요한복음 18:37)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사순절에 우리는 다시금 진리 앞에 서야 합니다. 예수님은 진리를 증언하시기 위해 오셨고, 그 진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 진리는 세상의 권력, 정치적 계산, 종교적 위선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작동합니다. 그것은 자기를 내어주는 사랑이며, 불의한 자를 대신하여 죽으시는 은혜입니다.

빌라도는 그 진리 앞에 서 있었지만 외면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두 번이나 무죄라고 선언했지만, 결국은 두려움에 굴복하고 군중의 소리에 따라 불의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우리는 진리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하겠습니까?

예수님은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요한복음 18:37). 이 사순절,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그 진리 앞에 정직하게 서는 우리 되기를 원합니다. 유다의 배신, 군중의 외침, 빌라도의 침묵, 그 모두를 넘어서 예수님은 오늘도 당신을 부르십니다. 진리는 지금도 살아계십니다. 그 앞에 엎드리십시오. 그리고 그 진리 안에서 다시 살아나십시오.

주님의 고난은 진리를 증언하기 위한 길이었고, 그 진리는 곧 우리를 살리는 복음입니다. 그 진리 앞에 선 우리 모두가 그 복음을 따라 살아가는 참된 제자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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